서울 찾은 외국인, 쇼핑 넘어 병원·등산으로…소비지도 달라졌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가 의료·웰니스·등산 등 목적이 뚜렷한 서비스로 넓어지고 있다. 쇼핑은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병원 예약과 숙박·체험에 쓰는 돈이 빠르게 늘면서 국적과 방문 목적에 맞춘 관광정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일정이 달라지고 있다. 명동과 면세점에서 쇼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부과나 검진센터를 예약하고, 북한산·북악산에서 장비를 빌려 산을 오르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서울 관광의 규모도 커졌다. 서울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서울 관광산업 매출은 45조6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서울 지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3%였다. 방한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2000만명을 넘어서면 서울 관광산업 규모는 약 51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연구원은 내다봤다.
눈에 띄는 부분은 관광객이 돈을 쓰는 곳이다. 2022년과 2024년을 비교하면 면세점과 기념품점 등이 포함된 쇼핑업 매출은 1% 줄었다. 반면 여행 예약과 맞춤형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여행서비스업은 325%, 숙박업은 149% 증가했다. 쇼핑 수요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관광객의 지출이 예약·체류·체험으로 분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들어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지난 4월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56만명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18.8% 증가했다. 이들이 서울에서 사용한 카드 금액은 1조1532억원으로 1년 전보다 50.5% 늘었다.
쇼핑은 전체 소비의 45.4%를 차지해 여전히 가장 큰 시장이었다. 그러나 의료·웰니스 소비도 24.8%에 달했다. 같은 달 의료관광 소비액은 1921억원으로 전년보다 59.2% 늘었고, 뷰티 업종 소비도 35%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지갑이 쇼핑과 병원, 미용, 음식, 숙박으로 나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의료비 지출이 큰 것은 다른 관광 목적지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최근 일본·싱가포르·베트남·태국 관광객의 2024~2025년 VISA 결제를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쓴 업종은 의료였다. 전체 결제액의 20.1%를 차지해 프리미엄 쇼핑 18.3%를 앞섰다. 비교 대상인 일본·홍콩·싱가포르·미국·호주 가운데 의료가 지출 1위로 나타난 곳은 한국뿐이었다. 다만 해당 자료는 VISA 카드 결제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한계가 있다.
국적별로도 차이가 뚜렷했다. 일본 관광객은 한국에서 쓴 돈의 22.3%를 의료에 사용했다. 태국 관광객의 의료비 비중은 18.2%, 싱가포르 관광객은 17.2%였다. 반면 베트남 관광객은 프리미엄 쇼핑 비중이 40.2%로 가장 높았다. 모든 외국인 관광객을 같은 소비층으로 보고 접근하기 어려워진 이유다.
의료관광 수요는 실제 환자 수에서도 확인된다. 2025년 서울에서 진료받은 외국인환자는 175만5002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2023년 47만3340명과 비교하면 2년 만에 3.7배로 늘어난 규모다. 전국 외국인환자 201만1822명 가운데 대부분이 서울에 집중됐다.
병원을 찾은 외국인의 소비는 진료비에서 끝나지 않는다. 2024년 외국인환자가 서울에서 결제한 카드 금액은 모두 2조8634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의료업종 결제액은 1조2310억원으로 전체의 43%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숙박과 쇼핑, 음식, 교통 등 병원 밖에서 발생한 소비다. 외국인환자 1명이 서울에서 사용한 카드 금액도 평균 322만원으로, 이 중 의료비는 평균 160만원이었다.
늘어나는 환자에 맞춰 관련 인프라도 확대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의료관광 통역 코디네이터 인력풀을 기존 108명에서 10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영어·중국어·일본어뿐 아니라 러시아어와 아랍어 인력도 보강한다. 병원 정보와 비자, 숙박, 관광 정보를 한곳에서 안내하는 통합 플랫폼과 장기 체류가 가능한 의료친화 숙박시설도 준비하고 있다.
의료관광과 함께 등산도 서울을 찾는 이유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서울관광재단은 북한산과 북악산, 관악산에 등산관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은 이곳에서 등산화와 등산복, 스틱 등 장비를 빌리고 짐 보관과 코스 안내도 받을 수 있다. 산을 보기만 하는 관광이 아니라 직접 걷고 체험하려는 수요에 맞춘 서비스다.
서울연구원은 쇼핑에 집중됐던 기존 관광 통계와 정책만으로는 최근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봤다. 의료관광을 비롯해 새롭게 확인되는 소비를 관광산업 통계에 반영하고, 문화 콘텐츠와 연결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외국인 관광객 수가 늘어난다고 관광산업의 성과가 저절로 커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 관광객에게는 의료서비스가, 베트남 관광객에게는 쇼핑이 더 중요한 방문 목적일 수 있다. 의료관광객은 통역과 장기 숙박, 사후관리가 필요하고, 등산 관광객은 장비와 이동·코스 정보가 필요하다.
외국인 관광객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홍보하던 방식은 한계가 뚜렷해졌다. 이제는 몇 명이 서울을 찾았는지만큼, 어떤 목적으로 방문해 어디에서 돈을 쓰고 얼마나 머무는지를 따져야 할 때다.